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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1 / 짧소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노래가사 중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 이 부분의 멜로디가 아련하게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시기 시청 앞에 지하철역이 있는 곳은 서울 뿐이었다. 시청역 앞에서, 시청역에서... 는 노래 제목으로 삼기에 참으로 건조하다. 노래가 전하는 아련함과 추억은 '지하철역'과 어울린다. 그냥 역이라기엔, 아마도 버스정류장을 떠올릴 이들을 배려했을지도 모르고... 100일 휴가로 기억한다. 군대에서 나온 첫 휴가. 빳빳한 군복, 어색한 도심. 학교 친구들을 보려고 바로 신촌으로 향했다. 회기역에서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시청역의 2호선 갈아타기는 동선이 꽤 쉬운 편이다. 외선/내선이 함께 쓰는 플랫폼이라 헷갈릴 우려도 없고, 그저, 녹색을 보며 걸을 뿐. 걸어 오르기엔 조금 길고, 에스컬레이터는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통로를 지나야 한다. '굳이?'를 무시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오르는 나의 오른편으로, 내려오는 H가 보인다. - 어? - 어? 서로의 자리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 저 짧은 소리 외에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서, 나는 급히 계단으로 그녀에게 내려간다. H는 이미 들어온 열차에 탄 상태였다. - 01x xxx xxxx 내 번호야. 전화해! 문 밖에 선 나에게 말풍선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날라오곤, 문이 닫혔다. 번호를 외우고, 외우고, 외우고, 어딘가에 옮겨 적어 두었다. 기억을 했고, 하고자 하면 반드시 전화를 할 수 있었으나, 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들려줄 빛나는 열매가 없었다. - H를 기억하며2.

[2024.09.10] 젖은 수건 / 짧소

  14층을 누른 아저씨는 아마도 탁송 대리 배달과 같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한 켠에 젖은 수건을 두르고 주머니가 많은 조끼와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그가 있었다. 그가 14층, 나는 12층, 각자가 한 구석을 차지하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그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다. 새벽 5시 경, 버스 첫 차에 맞춰 집을 나섰을 것이다. 밤새 일했다기엔, 들어오는 시간이 너무 늦고, 보통의 아침에 일을 나섰다기엔, 그에게 뭍은 시간이 꽤 길어 보였다. 지금껏 바쁘게 걸었으리라.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했으리라. 점심 이후 어떤 종류의 '콜'이건 시들해질 무렵,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들어갈까. 이것만 할까. 일단 집 근처로 갈까. 14층에 내릴 그는, 젖은 수건처럼 무겁게 집에 들어가, 몸을 말릴 시간을 가질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일 것이다. 그러곤, 몇 가지 질문과 선택을 하고, 아마도 다시 집을 나설 것이다. 그때는 젖은 수건이 좀 말랐기를 바란다. "12층에 내린 아저씨는 아마도 탁송 대리 배달과 같은 일을 하는 것 같다. 당췌 콜이 없다. 몸이 무겁다. 젖은 수건처럼."

2024.07.03 / 짧소

- 눈을 감으면 뭐가 보여? 그러니까 저 질문은 매우 오래 전, 어느 밤에 성립한 질문이다.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고, 상경을 앞둔, 바로 전날 밤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일 내일을 두고, 마지막일 밤을 보낸다. 오래된 컴퓨터 시디롬을 고쳐보다가 더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와 CD를 정리하다가 그렇게 들려오는 tiny little 이라는 가사를 흥얼거려보다가, 눈을 감는다. 밤이니까. 어떤 형상이 별처럼 빛나다가 기이하게 움직이다가 사그러진다. 방금 불을 껐으니까. ... 눈을 감으면, 별이 보인다는 답을 하는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찾으러, 나는 내일 떠나는 것이라고. - 밝은 선 같은게 보이는 것 같은데, 왜요? 별 같기도 하고. 까만 밤과 빛나는 웃음과 나의 놀라움이 하나가 된다. Y였다. 저 질문이 왜 필요했을까, '그' 사람을 왜 찾아야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생각하면, 그 시절은, 아니 그 전부터 나는, 늘 불안했다. 외로웠고. 혼자였다. 무엇이 그런 종류의 결함을 이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렇다는 것과 어떤 해결책도 없이 항상 그럴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그' 사람을 찾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쉬운 방식이다. 이것은 해결될 문제인데, 단지 어떤 조건이 필요할 뿐이야. 그런데, 그 조건, 그러니까, 나와 Y는 짧지 않은 기간 소중했고, 소홀해지는 중이었다. 질문을 바꿔보자. - Y를 생각하며

2024.06.25 // 짧소

     H는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다. 짝사랑이었던 기간이 더 길었고, H의 첫사랑은 확실히 내가 아니었으니, 말하자면, 시작부터 내가 지고 들어간 셈이다.      H는 그저 빈 시간을 채우는 무언가를 찾았던 것임을 이제서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도, 과거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바래져 가지만, 사진을 채운 겨울이 여름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어느 겨울,     H와 나는 다른 선배 하나와 함께 군 복무 중인 선배에게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어떤 시국이었는지 외출, 외박이 불가능했고, 우린 잠시 속초 해변에 들렀다.     겨울은 춥고, 겨울 해변은 그래서 햇빛이 충만함에도 시릴 뿐이다. 빈 해변은 바라보기에 좋지, 거닐기에는 영 별로인 곳이다. 그럼에도, 꽤 남은 버스 시간을 때우기에, 젊은이들에게 해변은 또 꽤 낭만적이다. 한 커플이 해변에 있었을 뿐, 그렇게 넓은 해변은 겨울처럼 외로워 보였다.     그 커플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건네며, 한장 찍어달라 했다.     한 번이다. 두 번은 낭만이 아니지. 그들은 최고의 포즈를, 나는 최고의 구도를 완성했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이렇게 탄생하나 보다.     커플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우리 셋도 찍어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결정적 순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H와 다른 선배를 사이에 두고, 내가 가운데에서 싱긋 웃었다.      자, 이제 사진을 누가 갖지? 폴라로이드는 그런 것이다. 원본, 단 하나 뿐인.     - 너가 가져.     H가 말했다.     눈에 시린 눈물이 맺히고 닦길 몇 번. 우린 해변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폴라로이드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