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다. 짝사랑이었던 기간이 더 길었고, H의 첫사랑은 확실히 내가 아니었으니, 말하자면, 시작부터 내가 지고 들어간 셈이다. H는 그저 빈 시간을 채우는 무언가를 찾았던 것임을 이제서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도, 과거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바래져 가지만, 사진을 채운 겨울이 여름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어느 겨울, H와 나는 다른 선배 하나와 함께 군 복무 중인 선배에게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어떤 시국이었는지 외출, 외박이 불가능했고, 우린 잠시 속초 해변에 들렀다. 겨울은 춥고, 겨울 해변은 그래서 햇빛이 충만함에도 시릴 뿐이다. 빈 해변은 바라보기에 좋지, 거닐기에는 영 별로인 곳이다. 그럼에도, 꽤 남은 버스 시간을 때우기에, 젊은이들에게 해변은 또 꽤 낭만적이다. 한 커플이 해변에 있었을 뿐, 그렇게 넓은 해변은 겨울처럼 외로워 보였다. 그 커플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건네며, 한장 찍어달라 했다. 한 번이다. 두 번은 낭만이 아니지. 그들은 최고의 포즈를, 나는 최고의 구도를 완성했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이렇게 탄생하나 보다. 커플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우리 셋도 찍어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결정적 순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H와 다른 선배를 사이에 두고, 내가 가운데에서 싱긋 웃었다. 자, 이제 사진을 누가 갖지? 폴라로이드는 그런 것이다. 원본, 단 하나 뿐인. - 너가 가져. H가 말했다. 눈에 시린 눈물이 맺히고 닦길 몇 번. 우린 해변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폴라로이드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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