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노래가사 중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 이 부분의 멜로디가 아련하게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시기 시청 앞에 지하철역이 있는 곳은 서울 뿐이었다. 시청역 앞에서, 시청역에서... 는 노래 제목으로 삼기에 참으로 건조하다. 노래가 전하는 아련함과 추억은 '지하철역'과 어울린다. 그냥 역이라기엔, 아마도 버스정류장을 떠올릴 이들을 배려했을지도 모르고... 100일 휴가로 기억한다. 군대에서 나온 첫 휴가. 빳빳한 군복, 어색한 도심. 학교 친구들을 보려고 바로 신촌으로 향했다. 회기역에서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시청역의 2호선 갈아타기는 동선이 꽤 쉬운 편이다. 외선/내선이 함께 쓰는 플랫폼이라 헷갈릴 우려도 없고, 그저, 녹색을 보며 걸을 뿐. 걸어 오르기엔 조금 길고, 에스컬레이터는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통로를 지나야 한다. '굳이?'를 무시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오르는 나의 오른편으로, 내려오는 H가 보인다. - 어? - 어? 서로의 자리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 저 짧은 소리 외에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서, 나는 급히 계단으로 그녀에게 내려간다. H는 이미 들어온 열차에 탄 상태였다. - 01x xxx xxxx 내 번호야. 전화해! 문 밖에 선 나에게 말풍선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날라오곤, 문이 닫혔다. 번호를 외우고, 외우고, 외우고, 어딘가에 옮겨 적어 두었다. 기억을 했고, 하고자 하면 반드시 전화를 할 수 있었으나, 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들려줄 빛나는 열매가 없었다. - H를 기억하며2.
H는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다. 짝사랑이었던 기간이 더 길었고, H의 첫사랑은 확실히 내가 아니었으니, 말하자면, 시작부터 내가 지고 들어간 셈이다. H는 그저 빈 시간을 채우는 무언가를 찾았던 것임을 이제서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도, 과거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바래져 가지만, 사진을 채운 겨울이 여름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어느 겨울, H와 나는 다른 선배 하나와 함께 군 복무 중인 선배에게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어떤 시국이었는지 외출, 외박이 불가능했고, 우린 잠시 속초 해변에 들렀다. 겨울은 춥고, 겨울 해변은 그래서 햇빛이 충만함에도 시릴 뿐이다. 빈 해변은 바라보기에 좋지, 거닐기에는 영 별로인 곳이다. 그럼에도, 꽤 남은 버스 시간을 때우기에, 젊은이들에게 해변은 또 꽤 낭만적이다. 한 커플이 해변에 있었을 뿐, 그렇게 넓은 해변은 겨울처럼 외로워 보였다. 그 커플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건네며, 한장 찍어달라 했다. 한 번이다. 두 번은 낭만이 아니지. 그들은 최고의 포즈를, 나는 최고의 구도를 완성했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이렇게 탄생하나 보다. 커플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우리 셋도 찍어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결정적 순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H와 다른 선배를 사이에 두고, 내가 가운데에서 싱긋 웃었다. 자, 이제 사진을 누가 갖지? 폴라로이드는 그런 것이다. 원본, 단 하나 뿐인. - 너가 가져. H가 말했다. 눈에 시린 눈물이 맺히고 닦길 몇 번. 우린 해변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폴라로이드라는 것을 ...
기괴하다.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웠다. 이 남자는 원하는 것을 다 이룬 듯 보이지만, 이내 '실직'의 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그것은 현실이 된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줄이고 아끼고 서로 도우면 그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니고. 사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 터인데,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불안에 전염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 있다. 가슴 한 구석이 울렁울렁대다가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이내 손발이 저리는, 그런 느낌. 나는 이 불안함을 왜 보고 있는가. 주인공의 파괴적이고 기괴한 행위들이 나에게는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온통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며, 영화의 끝을 기다렸던 것 같다. '어떻게든' 실직을 극복한 그의 업은, 기계와 함께하는 것이다. 기계의 일에 반드시 필요한 부속품이 그가 다시 찾은 직이다. 이후의 삶은 다른 영화로 이어질 것만 같다. 구성원으로 남을지 모호한 가족과 홀로인 업. 마침 '타인의 삶'이란 영화가 있다. 2025.9.24 ⭐⭐⭐⭐ ⭐ 9 반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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